병든 문명의 껍질 '정'으로 털고... 

'탈도시' 예술인 탐방- 자연과 삽니다 <9>  조각가 오광섭

  • 반인반수의 인간-벌레 등 소재...심도있게 표현
  • 형식-기법 의존하는 풍토'실망' ... 춘천군서 3년째 고행

섬세하면서도 까다로운 밀랍주조로 현대의 箴言(잠언)들을 새겨온 조각가 오광섭씨(38∙吳光燮).

86년 이탈리아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온 그는 경기도 하남을 거쳐 강원도 춘천군의 한 시골로 들어와 3년째 산다.

젊은 작가들이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안팎으로 온갖 노력을 억지스러울 정도로 펼쳐야 하는 현실적 여건 아래서 그는 오히려 밖으로 멀어져 가며, 거짓과 과장의 작업들, 생활을 마다하고 나름의 원칙을 확인하려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작가들은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러워하기도 해야 합니다. 재료, 그리고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고통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희열의 작품도 기대할 수 있고, 보는 이와의 교감이 잇는 것이겠죠. 제 작업장은 그런 부끄러움 고통 희열을 허락하는 나만의 아성이어야 합니다. 현실을 위한 과장과 거짓들로부터 작업실을 보호하고자 이렇게 밖으로 도는 것이죠."

날씨가 풀려감에 따라 퇴비냄새가 더욱 짙어가고, 밟으면 푹푹 들어가는 맨땅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농촌마을. 산자락에 안겨 그 마을 맨 끝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4칸의 방을 가진 평범한 농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소나 돼지를 기르고, 쌀가마니 쌓아두는 헛간과 마루에는 밀랍주조에 쓰이는 수백 가지 작업도구, 용접도구들과 작품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이곳 오씨의 창작열기를 짐작케 했다. 큰방과 작은방은 거실 침실 사랑방 등으로 바뀌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섬세한 만큼 까다롭고 힘든 밀랍주조에 대한 그의 애착은 이곳에서 더욱 깊어갔다. 밀랍으로 형태를 만들고 이를 녹여 브론즈화 하면서 일일이 손으로 형태를 뜨고, 선 면의 뒷처리에 처음 만들 때와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등 까다로운 공정을 그는 수도승처럼 차분히 고행하고 있었다.

요즘같이 아이디어, 감각적인 형식과 기법에 의존하는 화단풍토를 생각해보면, 서울을 벗어나서의 이곳 시골로의 정착, 까다로운 작업에로의 탐닉 등 그의 작업과 삶은 시대에 반항하는 고행같은 인상을 전한다.

그의 최근 작업은 문명사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재미있고 심도있게 건드리는 작업들이다. 반인반수의 인간들이 기괴하게 등장하고 벌레와 짐승 등 생명체들도 변형된 모습으로 뭔가를 토해낸다. 그리고 이들은 계단, 벽, 나무 등 꿈속에서 보는 듯한 비현실적 구조와 질서 속에 덮어싸여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처음 추상적 무대장치처럼 낯설게 보일 만큼 기존 조각형식을 넘어서고 내용 또한 특이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응시하고 음미하는 만큼 환상과 재미를 전한다. 작품마다 휴머니즘, 자연주의와 마찰하는 현대문명의 치부를 꼬집는 이야기들이 오랜 여운을 던지는 잠언들처럼, 신랄하고 재미있는 형상과 내밀한 이야기로 번안돼 그 안에 자연스레 녹아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적개념에서 탈피, 현대문명의 여러 모습을 내 나름의 언어로 말하려는 몸부림들에서 나온 작업들이지요. 그러다 보니 형식적으로 추상적인 무대장치처럼 한 주제에 어울리는 다양한 상황을 함축, 복합적인 조형을 추구하고, 자연과 휴머니티 등에 대한 내용도 새로운 시각에서 진지함을 더하려 탐구하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정감을 시골 생활용기의 다양한 이미지로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해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곳 생활의 즐거움이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작품 속으로 끼어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고집처럼 이렇게 저를 밖으로 몰아왔지만, 자연의 속맛을 천천히 즐기는 재미를 깨달았지요. 앞으로는 이런 즐거움과 작품하는 고통을 함께 즐기면서 표현의 넓이와 깊이도 더욱 실험하고자 합니다."


춘천=박삼철 기자 <문화연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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