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비판으로서의 은유,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한 몸짓
吳光燮의 근작들 

吳光燮밀랍주조전 서문 (1995. 4. 12~26 예화랑)
김복영 (미술평론가, 홍익대교수, 철학박사)


90년 3월에 예화랑 초대전을 가진 지 5년 만에 다시 초대전을 갖는 오광섭의 근작들은 전자의 작품들이 가졌던 소담한 은유들의 세계를 벗어나 90년대의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겪고 있거나 장차 겪게 될 위기의 상황들을 겨냥해서 보다 격렬한 표정을 더해가고 있다. <격렬한 표정>이란 이를테면 인간의 무모한 지적능력 앞에서 힘없이 사라져가는 자연의 훼손된 모습과 상대적으로 비인간화 된 인간의 삶과 비극적 양태들, 아니면 점차 돌이킬 수 없는 거대문명 사회의 도래와 불확실한 지구촌락의 미래, 또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인류 문명의 일탈성에 대한 공포와 분노의 표정이거나 더 나아가서는 <비탄>의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소담한 데 서부터 공포, 분노, 비판으로 전향되고 있는 이러한 면모를 통해서 그의 근작들을 살펴볼 수도 있음직하다고 믿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종래의 소담한 은유의 작품들은 예컨대《굴레의 空間》('89), 《평화의 메신저》('89), 《나무와 그 위의 사람 그리고 태양》('89)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노와 비판보다는 회고와 되돌아가려는 의지 내지는 회복의 욕구, 말하자면 <복락원>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 작품들의 여러 차용된 은유들은 그 비유적 기능에 있어서 온유하고 담담한 기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데 목표를 두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면서 특히 근작들에 이르러 그의 차용 은유들의 역할은 현대문명에 대한 많은 의심과 회의, 더욱이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려는 데 바쳐지고 있고 이 점에서 근자의 변모의 일단을 짚어 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의 다음 <노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점차 돌이킬 없는 거대한 문명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짜여진 타율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 지금의 모습들이 우리가 갈구하는 본연의 모습일까 자연과 우주의 질서와 변화 앞에서기고만장 하던 인간의 갑작스런 무기력과 왜소함불확실한 지구촌 미래에 대한 두려움신의 존재죽음그리고 스스로 자멸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한 인류 문명의 일탈과연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를 가고 있으며 정도를 가고 있는 것일까나는 여기에 심각한 의문을 느낀다모두가 우리 인류로부터 비롯된 문제들을 눈과 가슴으로 끌어 안고 이야기를 풀어 보자고 한다
<
작업노트, 1995>

위기와 불안, 분노와 비판의 이야기를 말하고 풀어 보려는 데서 시작되고 있는 근작들은 따라서 종래의 작품들보다 은유들의 종류나 처리방식에 있어서 한층 더 <복합성>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29점의 출품작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은유들을 골라보자면 이러하다. 《역사의 수레》의 경우의 갑옷, 투구, 바퀴, 인공 건축물 나무, 새를 비롯해서 《갈등》의 경우의 얼굴만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의 형상, 교회첨탑, 마귀할멈 등이 자태와표정 모두에 있어서 극적인 동태를 담고 있는가 하면 《뉴스 20C.》의 경우 TV, 주사기, 마약, 부상당한 새, 혼이 나간 아나운서가 기아와 전쟁의 와중을 헤집고 있다든지 《문명제국》에서 처럼 무장한 로봇트, 불구자, 목에 칼이 채워진 삐에로, 그리고 폭발하는 모습 속에 갇힌 생물이 절규하는가 하면 《迷路》에서는 미로의 통로를 잇는 코너마다 바닥에 총을 든 도둑이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 여물통 속의 볼트, 낫트, 기계에 부속된 인간, 사다리 위의 괴물이 차례로 포치되며 《전쟁과 원죄》에서는 산, 집 모양의 구조물, 새 모양의 짐승, 탈을 쓴 사람, 녹슨 철모, 해와 호수 그리고 나무모양의 복합물들이 인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나아가 《심판》에서는 심판관 인신의 모습, 사각구조물, 튜브관 속에서 밖으로 삐져 나온 남녀 얼굴, 볼트 박힌 동물과 로봇트가 등장해서 위기의 인간상을 고발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복합적인 은유양상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경우《Jack in the box/실상과 허상》일 듯 싶다. 이 작품은 용수철 위에 로봇트 머리가 있고 그 속에서 튀어 나오는 도끼를 든 원시인이 섬뜩하고 극적인 인상을 보여 준다.

이와 접목된 사각상자 안의 은유 부조물들을 일일이 각 면을 따라 열거하자면 적어도 이러하다. 한 장면에는 알약, 캡슐의 얼굴, 마른 팔과 주사기가 있고 그 다음 장면에는 도로, 질주하는 자동차, 건물 모양을 한 채 뛰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그 다음 장면에는 공장, 톱니바퀴, 자화상이 인상적이며 마지막 장면에는 도박, 여자, 카드, 화투, 주사위가 뒹구는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속물화, 기계화, 퇴폐와 부조리의 온갖 양상 속에 포위되어 살고 있는 현대인의 인간 상황을 <은유적으로> 완곡히 시사할 뿐 아니라 비판을 동시에 곁들이고 있다.

근작들의 일부만 서술할지라도 소담한 주제의 은유들 보다는 격렬한 몸짓의 은유들이 뚜렷이 부각되고 또 작품의 전면을 지배하며 오늘의 복잡한 상황만큼이나 그것들이 꾸며내는 삼차원적 공간들의 복잡한 상황에 주목하게 된다.

그가 이처럼 치열한 현대인의 정황들에 직접 다가서려는 뜻은 그가 이처럼 분노와 비판의 은유들을 제기함으로써 현대인의 왜곡되고 굴절된 인간상을 공격하고 비판하려는 데 있다. 그것은 의문과 회의의 태도를 넘어 적극적 <개입>이며 <돌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좀더 부연해서 말하자면 지금까지 인류가 간직해 온 지난날의 어두운 문명으로부터 밝은 미래를 향해 초월하자는 외침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는 과거의 부조리한 잔재들을 타파하고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의 근작들은 과거의 <해체>와 미래의 <복원>을 위한 조각적 언술이요 메시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도와 조치를 조각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 근작들은 이전보다 더 치밀하고 정교함을 보여 준다.

80년대 중반 이태리 유학을 시작하면서 목격하고 의식에 두기 시작한 문명의 내재율에 대한 관심이 이제사 본격적인 <언어>의 형태를 갖추고 본 궤도에 진입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세계 문명의 개화를 가져온 중심으로부터 오늘의 위기의 시대에 이르는 온갖 정황들을 수집하고 재처리하는 가운데 혼혈적이고 혼성화 되어가고 있는 세태를 그대로 반추하되 격렬하고 치열한 개입을 통해서 이를 강화시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의 조각언어를 통해서 오늘의 위기를 다시 읽게 해준다. 이를 위해 80년대 후반부터 탐색해 온 밀랍주조에 의한 정교한 브론즈 기법이 이제사 그 진가를 보이기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 작품마다 여러 은유형태들이 방향을 달리하면서 이 구석 저 구석, 혹은 작품의 한 가운데서와 속 안에서 크기와 모양을 달리해서 정밀하게 성형되어 안치되는 등, 치밀을 요하는 기법을 구사하면서 조각도 하나의 <언어>라고 하는 명법(命法)을 창안하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어느 하나의 형상들도 단순히 반복되거나 무의미하게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형태들 간의 선명한 관계와 교감을 강화함으로써 살아있는 감동을 자아낸다.

이것은 차라리 작가의 심성 가운데서만 탄생할 수 있었던 하나의 <환타지>요 <포에지>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변화에의 도전 긴장과 고뇌의 순간들에 정면으로 서자 막막한 고비를 뛰어넘었을 오는 희열의 즐거움을 나는 안다응집된 올가즘이 펼쳐질 나는 내가 조각가임을 끽한다
<
작업노트, 1995 >

요컨대 오광섭은 그의 특유의 기법적 성취의 하나인 밀랍주조를 거의 시적 경지에까지 끌어 올림으로써 자칫 은유형태들의 <차용법>이 과거의 잔재들을 복제하는 데 그칠 위험을 용이하게 뛰어넘어 하나의 창조적 수준을 확보하는 데 이르렀음을 확인시킨다.

그가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형상들이 시대와 문명사의 기록들 중에서 차용되었으면서도 복제형태로서 보다는 시적 이미지로 더 많이 감상되고 간주되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것들이 차례로 시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위기>를 내재한 메시지요, 나아가서는 부조리에 대해 분노를 발하고 비판을 가하면서 <복락원>의 피안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금번 예화랑 초대전은 그의 90년대의 형성과제의 성취와 진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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